8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출근을 위해 현관을 나서는데 오른편 한 귀퉁이에 뭔가 하얀 털뭉치가 보이고... 뭔가 싶어 들어 올려보니 얼굴이 엉망이 된 조그만 고양이가 울 기운도 없었던 건지 입만 뻐끔뻐끔,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무릎 위에 앉아있는 주인님 "레오"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주택가이고, 평소에도 길냥이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라 안타까운 애기들도 가끔 봐왔었지만 하나의 생명을 거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거니까요.
잠시 고민하는 사이 구조의 기회를 놓쳤었지만 이번에는 지금까지 봐온 것 중 최악, 거기에 어디 도망가기는커녕 야옹이라고 소리도 못 낼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어머니께 고양이용 우유와 물 좀 주라 부탁드리고 집 안에 모셔둔 후에 일단 출근을 했습니다.
퇴근하고 보니 중간에 기운을 조금 차렸는지 탈출을 시도(?)하다 어머니께 진압, 집에 11년 차 강쥐가 있어 집 안에 들이진 못하고 마당에 격리되어 있는 상태였는데요.
아무리 봐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녀석이고 스트리트에서 생활을 했을 테니 일단 병원부터 데려가는 것이 급선무!
길냥이 구조했다니 17년째 이용 중인 병원에서도 어디가 아플지 모르니 어지간하면 정들기 전에 심사숙고를 하란 말씀부터 하시던.. 그래도 이 조그만 녀석 살리는 게 우선일 테니 전염병 검사부터 해본 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항생제 주사만 맞히고 돌아왔습니다.
살아생전 벼룩이라는 걸 처음 보고 잡기도 했지만 잠시간의 스트리트 생활에서 같이 딸려온 부록(?) 같은 거였겠죠!
병원에서 추정하기로는 생후 30~40일 정도에 체중은 460g, 영양 결핍은 물론이고 잠시간의 스트리트 생활이었겠지만 다른 길냥이들로부터 공격이라도 받은 건지 여기저기 파이고 찍히고 과히 상태가 좋지는 못했는데요.
급작스레 들인 바람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병원에서 얻어온 사료를 물에 조금 불려주니 제 스스로도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한 건지 조금씩 먹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그리고 약간이지만 사료를 먹고 기운이라도 차린 건지 어깨를 타고 올라 제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부리는 녀석이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미에게 버림을 받은 건지 아니면 전 집사로부터 버림을 받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따뜻한 품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녀석이었나 봅니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다가도 안아달라며 힘없는 목소리로 불러대니 정말 급한 용무를 볼 때 외에는 계속 안고 있을 수밖에요.
그리고 병원에서 너무 비관적으로 말씀을 하셔서 다른 가족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모습이었지만 3일 차에 드디어 큰 볼일을 보면서 "쟤 이제 살겠다!"며 지금도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틈틈이 문안 인사(?)를 오고 있기도 합니다.
(가족들의 반응은 당연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 10년 전에 앞서 함께하던 강쥐를 무지개다리 건너 보내기도 했었기 때문에 정들었던 가족이 떠날 때의 아픔을 다들 알거든요!)
마침 주말이기도 했고 집에 고양이가 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질 않았었으니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었는데요.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은 초보 집사에게 전국에서 도착하는 응원과 구호품(?)들, 어리다는 말에 이유식 정도만 준비하고 고민하던 찰나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새 식구에게 뭐가 필요한지 고민해 볼 수 있게 된 거니까요~
항생제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잘 자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요.
그렇게 활기차던 녀석이 일요일 저녁부터 축~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사료도 먹지 않고 비실비실.. 안아보니 불덩이가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넘쳐 보이던 녀석이라도 역시 애기는 애기, 주말에 조카들이 와서 논다고 무리를 하기 했지만 집사의 잠시간의 방심이 화를 불러오고야 말았는데요.
처음부터 콧물이 계속 난다는 건 알고 있었고 단순히 감기인가 싶었지만 급하게 다시 병원을 가보니 허피스 감염이라고 어린 고양이들에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주로 발생을 한다고 합니다.
X-ray 촬영을 하니 폐렴 기운도 조금 있어 보이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을 듯하고 허피스 바이러스는 완치가 불가능, 면역력이 떨어지면 계속 재발한다고 하니 관심을 계속 가지고 지켜보는 방법뿐이라는데요.
그래도 이틀 동안 해열제 주사도 맞고 약도 잘 받아먹은 덕분인지 하루 만에 다시 기운을 차려서 다시 한번 마음을 쓸어내립니다 ㅠㅜ
그리고 이름 없이 "아가야"라고 불리던 녀석이 드디어 "레오"라는 이름도 가지게 되었는데요.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사자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너무 허약하게 품에 안긴 녀석이라 사자처럼 튼튼하고 용맹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콧물과 재채기가 멈추질 않아서 2주 정도 약을 먹긴 했지만 460g이던 몸무게도 780g(2주 전)이 되면서 무럭무럭 커가고 있는데요.
여전히 집사 품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안아달라고 하다가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내려달라고 옹알옹알, 품에서 벗어나면 온 집을 다 헤매고 다니며 갖은 사고(?)를 치고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건 UPS 아웃풋을 건드려 NAS에 배드섹터가 생겨버린 건데.. 장비 보호 방안도 강구를 해야 할 듯합니다 ㅠㅜ)
연휴가 끝나면 다시 병원을 가서 미루던 예방접종도 해야 할 텐데요.
손바닥만 하던 녀석이 겨우 한 달 만에 팔뚝만 해지고, 이제는 어디든 뛰어오르며 냉장고와 장롱 정도만 아니라면 모두 정복을 해버렸고요.
가끔 창밖을 보며 과연 집사를 제대로 고른 건지 고민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리고 전용 방석으로 지정한 공유기 평수가 작아서 더 넓혀달라는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선택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2021년 9월, 개인 사업 오픈 외에 레오의 집사가 된 것이 저에게도 가장 큰 삶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국민학교 때 두 마리 정도를 키웠었지만 그때는 제가 키운 것도 아니었죠.
집에서 먹다 남은 밥을 줘가며 고양이며 강아지를 키우던 시절, 한 마리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다른 한 마리는 집이 이사를 하면서 눈을 가리고 가야 한다는 걸 알지 못해 이사를 가자마자 도망을 가버렸다는 기억 정도만 남아있는데요.
가끔 조카가 레오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랬겠구나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36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운 인연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큰 욕심은 없습니다!
기왕에 시작된 묘연(猫緣), 그저 어디 아픈 곳 없이 같이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만 있을 뿐입니다.